본 콘텐츠는 23년 콜라블의 정한호 대표가 강원일보에 기고한 '글로컬(Global+Local) 와인 스토리'의 연재 시리즈입니다.
🍷 글로컬 와인 스토리
1편. 강원도 로컬 음식과 와인의 환상적인 페어링 (23.2.10)
2편. 강릉의 와인 글로컬라이제이션과 새로운 가능성 (23.2.17)
3편. 사업가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와인 에티켓 (23.3.3)
4편. 당신의 비즈니스를 성공으로 이끌어 줄 와인 이야기 (23.3.17)
5편. 중요한 식사 자리를 유쾌하게 만들어 주는 와인 이야기 (23.3.31)
6편. 보르도 와인이 불러온 (영국-프랑스) 백년전쟁 (23.4.21)
7편. 프랑스 보르도 그랑크뤼 등급의 숨겨진 이야기 (23.5.19)
8편. 슈퍼 투스칸. 이탈리아 프리미엄 와인의 상징 (23.6.23)
9편. 빈티지에 숨겨진 와인 품질의 진실 (23.7.21)
10편. 와인은 환경 파괴의 주범? (23.9.15)
11편. 프렌치 패러독스. 와인과 건강의 상관관계 (23.10.6)
12편. 삼복더위를 달래줄 여름 음식과 와인 페어링 (23.11.24)
7. 프랑스 보르도(Bordeaux) 그랑크뤼(Grands Crus Classé) 등급의 숨겨진 이야기
와인을 처음 접하고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한 번쯤 이런 얘기를 듣게 된다. “와인은 프랑스, 그중에서도 보르도 와인이 최고다. 특히 그랑크뤼 등급이라면 무조건 믿고 마실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말은 과연 사실일까? 오늘 칼럼의 주제와도 닿아있는 프랑스 보르도 지역. 그중에서도 메독 지역은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을 설레게 하는 곳이다. 이 지역엔 최고급 와인을 지칭하는 그랑크뤼 등급이란 게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지역인 만큼 잘못된 상식도 많이 알려진 곳이다. 오늘은 보르도의 그랑크뤼 등급을 소개하고 여기에 숨겨진 이야기를 전달해 볼까 한다. 그럼, 이제부터 17~19세기 낭만의 프랑스로 떠나보자.
19세기 프랑스 풍경
◾ 보르도 와인의 성장 배경
과거 프랑스에서 생산되는 고급 와인은 주로 파리에 거주하는 상류층들이 소비하곤 했다. 하지만, 보르도 지역은 파리까지의 물리적인 거리가 아주 멀었는데(약 600km), 그러다 보니 유통 과정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더군다나 와인 운송 과정에서 부과되는 세금의 종류도 많아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문제점도 있었다. 하지만, 보르도는 부르고뉴(Bourgogne), 샹파뉴(Champagne) 같은 내륙 지방과는 다르게 대서양을 끼고 있다는 지리적인 장점이 있었고, 바닷길을 따라 새로운 시장인 네덜란드와 영국 시장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 보르도 와인의 최대 수입국은 ‘영국’
지난 회차 샤또 딸보(Chateau Talbot)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영국은 보르도 와인의 최대 수입국이었다. 당시 영국에서 보르도 와인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가격보다는 우수한 품질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졌는데, 이에 따라 좋은 품질의 와인을 생산하는 메독(Médoc), 그라브(Graves), 페삭(Pessac) 지역의 인기가 높아졌다. 그라브와 페삭 지역은 지금도 유명한 화이트 산지로, 당시 색이 밝고 가벼운 스타일을 선호한 영국인의 기호에 적합하게 와인을 만들곤 했다. 17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영국의 중·상류층에게도 보르도 와인이 대단한 인기를 누리게 되는데, 그 결과 수요와 가격이 끊임없이 오르는 상황이 벌어지며 보르도 지역은 세계 최고의 와인 산지 중 하나로 명성을 얻게 된다.
◾ 보르도 와인 발전의 숨겨진 공신 ‘네덜란드’
당시 네덜란드는 상당한 강대국이자 영국과 더불어 보르도 와인의 큰 소비국이었다. 다만, 소비자들의 선호도는 영국과 다소 달랐는데 네덜란드에선 달콤한 스위트 와인이나 색깔이 짙고 풀바디한 레드 와인이 인기가 많았다. 그리고, 이렇게 다채로운 소비자의 기호도를 맞춰나가며 보르도 와인은 발전해 나가기 시작한다. 네덜란드인들은 운송 과정에서 와인이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다양한 시도도 했었는데,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오크통에 이산화황(SO₂)*을 넣고 그을린 후에 와인을 보관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이산화황이 살균제 혹은 산화 방지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전혀 모르던 시절이지만, 이 방식을 통해 와인이 오랫동안 보관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네덜란드인들이 활용하던 이 방식 덕분에 보르도 와인은 장기 숙성이 가능한 와인이 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산화황(SO₂): 현재는 대부분의 와인이 병입될 때 소량 첨가되는 유독성 기체 물질이며, 와인 양조 과정에서도 일정 부분 자연 발생하고 있다. 이 물질은 외부에서 유입되는 산소와 먼저 접촉하며 와인의 산화를 방지해 주는 방부제 역할을 하는 동시에 살균제 역할도 하면서 와인을 보호해 준다.
선박에 실려 있는 와인 오크통
◾ 1855년 세계 박람회
그럼 이번엔 19세기 파리로 떠나보자. 1855년, 나폴레옹 3세는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 세계 박람회를 개최한다. 그리고 이곳에 참가한 많은 국가들은 각기 다양한 물품을 출품하는데 개최국 프랑스는 자국의 보르도 와인을 출품하기로 한다. 당시 와인은 각 종류당 6병만 출품 가능했는데, 이는 일부 심사관들이 테이스팅 하거나 전시장에 진열하기에는 충분했지만 수천 명의 일반 대중들이 테이스팅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따라서, 당시 보르도 상공회의소(Bordeaux Chamber of Commerce and Industry)는 출품된 와인들의 세부 지역을 그린 지도와 전체 와인 목록을 만들어 대중들에게 제공하기로 결정한다. 1855년 4월 5일, 보르도 상공회의소는 당시 보르도 와인의 유통을 전담하고 있던 보르도 와인 중개 협회(Broker's Union)에 이러한 상황을 전달하며, 5개 등급에 속해 있는 생산자 명단과 각 생산자의 포도원(와이너리) 부지를 그려 넣은 지도를 제출해 달라는 요청을 하게 된다. 약 2주 후인 1855년 4월 18일, 보르도 와인 중개 협회는 지도와 함께 생산자 명단을 제출하였고 이에는 총 5개 등급에 60개의 생산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보르도 그랑크뤼 등급의 시초가 된다. 당시 등급 분류에 포함된 60개의 생산자들은 '그랑 크뤼 등급' 명칭을 부여받게 되었고, 이는 이 지역에서 최고의 와인을 생산하는 생산자(또는 와이너리)임을 의미하게 됐다. 이와 더불어 등급 분류는 세계 박람회에서 보르도 와인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임시적인 조치였기 때문에 절대 공식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칙령이 달렸으나, 160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단 두 번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조정이나 변경은 없게 된다.
*예외 1. 1855년 9월 16일, 보르도 > 메독 > 오-메독(Haut-Médoc) 지역의 생산자인 깡뜨메를르(Cantemerle)가 5등급에 추가된다. 이 결과 그랑크뤼 등급을 부여받은 생산자는 총 61곳이 된다.
예외 2. 1973년 6월, 2등급 생산자였던 샤또 무통-로칠드(Château Mouton-Rothschild)가 1등급으로 승격되었고, 이로써 현재 우리나라에서 '5대 샤또'라고 불리는 5종의 1등급 와인 생산자가 탄생하게 된다.
보르도 1등급 와인 샤또 라피트 로칠드 와이너리 전경
◾ 끝없는 갈등과 재조정 요구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재는 등급 제도를 두고 끊임없는 잡음이 나오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당시 등급 분류에 선정된 생산자들 중에는 시간이 흐르면서 소유주가 바뀌거나 포도밭 부지가 변하면서 품질이 저하된 곳도 있다. 둘째, 당시 그랑크뤼 등급 리스트에 선정되진 못했지만 현재는 그랑크뤼 와인보다 훨씬 더 높은 품질 수준의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도 있다. 그리고 등급 분류 이후에 새로 생겨난 생산자 중에서도 좋은 품질의 와인을 만드는 곳이 여럿 생겨났다. 마지막으로, 해당 등급 분류는 레드 와인 부문에 있어서는 보르도 > 메독(Médoc) 지방의 생산자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는 문제가 있다. (이후에 그라브(Graves)나 생-테밀리옹(Saint-Émilion) 지역에서도 별도의 등급 체계가 제정된다.)
즉, 세월이 흐르며 현재를 반영하지 못하는 제도 때문에 지금이라도 등급 분류가 재조정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 만들어진 등급의 상징성이나 명성, 그리고 상업성 등 다양한 측면의 이해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 보니 재조정을 진행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지금은 단순 등급보다는 시장가가 오히려 더 신뢰할만한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결국 소비자들이 가격으로 등급을 부여한 것이다. 결국, 아무리 훌륭한 제도나 법규도 시장의 힘을 이길 수 없다는 명확한 사례가 보르도 그랑크뤼 등급이 아닐까 싶다.
정한호 | 콜라블(Collable) 대표
본 콘텐츠는 23년 콜라블의 정한호 대표가 강원일보에 기고한 '글로컬(Global+Local) 와인 스토리'의 연재 시리즈입니다.
🍷 글로컬 와인 스토리
1편. 강원도 로컬 음식과 와인의 환상적인 페어링 (23.2.10)
2편. 강릉의 와인 글로컬라이제이션과 새로운 가능성 (23.2.17)
3편. 사업가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와인 에티켓 (23.3.3)
4편. 당신의 비즈니스를 성공으로 이끌어 줄 와인 이야기 (23.3.17)
5편. 중요한 식사 자리를 유쾌하게 만들어 주는 와인 이야기 (23.3.31)
6편. 보르도 와인이 불러온 (영국-프랑스) 백년전쟁 (23.4.21)
7편. 프랑스 보르도 그랑크뤼 등급의 숨겨진 이야기 (23.5.19)
8편. 슈퍼 투스칸. 이탈리아 프리미엄 와인의 상징 (23.6.23)
9편. 빈티지에 숨겨진 와인 품질의 진실 (23.7.21)
10편. 와인은 환경 파괴의 주범? (23.9.15)
11편. 프렌치 패러독스. 와인과 건강의 상관관계 (23.10.6)
12편. 삼복더위를 달래줄 여름 음식과 와인 페어링 (23.11.24)
7. 프랑스 보르도(Bordeaux) 그랑크뤼(Grands Crus Classé) 등급의 숨겨진 이야기
와인을 처음 접하고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한 번쯤 이런 얘기를 듣게 된다. “와인은 프랑스, 그중에서도 보르도 와인이 최고다. 특히 그랑크뤼 등급이라면 무조건 믿고 마실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말은 과연 사실일까? 오늘 칼럼의 주제와도 닿아있는 프랑스 보르도 지역. 그중에서도 메독 지역은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을 설레게 하는 곳이다. 이 지역엔 최고급 와인을 지칭하는 그랑크뤼 등급이란 게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지역인 만큼 잘못된 상식도 많이 알려진 곳이다. 오늘은 보르도의 그랑크뤼 등급을 소개하고 여기에 숨겨진 이야기를 전달해 볼까 한다. 그럼, 이제부터 17~19세기 낭만의 프랑스로 떠나보자.
19세기 프랑스 풍경
◾ 보르도 와인의 성장 배경
과거 프랑스에서 생산되는 고급 와인은 주로 파리에 거주하는 상류층들이 소비하곤 했다. 하지만, 보르도 지역은 파리까지의 물리적인 거리가 아주 멀었는데(약 600km), 그러다 보니 유통 과정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더군다나 와인 운송 과정에서 부과되는 세금의 종류도 많아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문제점도 있었다. 하지만, 보르도는 부르고뉴(Bourgogne), 샹파뉴(Champagne) 같은 내륙 지방과는 다르게 대서양을 끼고 있다는 지리적인 장점이 있었고, 바닷길을 따라 새로운 시장인 네덜란드와 영국 시장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 보르도 와인의 최대 수입국은 ‘영국’
지난 회차 샤또 딸보(Chateau Talbot)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영국은 보르도 와인의 최대 수입국이었다. 당시 영국에서 보르도 와인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가격보다는 우수한 품질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졌는데, 이에 따라 좋은 품질의 와인을 생산하는 메독(Médoc), 그라브(Graves), 페삭(Pessac) 지역의 인기가 높아졌다. 그라브와 페삭 지역은 지금도 유명한 화이트 산지로, 당시 색이 밝고 가벼운 스타일을 선호한 영국인의 기호에 적합하게 와인을 만들곤 했다. 17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영국의 중·상류층에게도 보르도 와인이 대단한 인기를 누리게 되는데, 그 결과 수요와 가격이 끊임없이 오르는 상황이 벌어지며 보르도 지역은 세계 최고의 와인 산지 중 하나로 명성을 얻게 된다.
◾ 보르도 와인 발전의 숨겨진 공신 ‘네덜란드’
당시 네덜란드는 상당한 강대국이자 영국과 더불어 보르도 와인의 큰 소비국이었다. 다만, 소비자들의 선호도는 영국과 다소 달랐는데 네덜란드에선 달콤한 스위트 와인이나 색깔이 짙고 풀바디한 레드 와인이 인기가 많았다. 그리고, 이렇게 다채로운 소비자의 기호도를 맞춰나가며 보르도 와인은 발전해 나가기 시작한다. 네덜란드인들은 운송 과정에서 와인이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다양한 시도도 했었는데,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오크통에 이산화황(SO₂)*을 넣고 그을린 후에 와인을 보관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이산화황이 살균제 혹은 산화 방지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전혀 모르던 시절이지만, 이 방식을 통해 와인이 오랫동안 보관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네덜란드인들이 활용하던 이 방식 덕분에 보르도 와인은 장기 숙성이 가능한 와인이 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산화황(SO₂): 현재는 대부분의 와인이 병입될 때 소량 첨가되는 유독성 기체 물질이며, 와인 양조 과정에서도 일정 부분 자연 발생하고 있다. 이 물질은 외부에서 유입되는 산소와 먼저 접촉하며 와인의 산화를 방지해 주는 방부제 역할을 하는 동시에 살균제 역할도 하면서 와인을 보호해 준다.
선박에 실려 있는 와인 오크통
◾ 1855년 세계 박람회
그럼 이번엔 19세기 파리로 떠나보자. 1855년, 나폴레옹 3세는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 세계 박람회를 개최한다. 그리고 이곳에 참가한 많은 국가들은 각기 다양한 물품을 출품하는데 개최국 프랑스는 자국의 보르도 와인을 출품하기로 한다. 당시 와인은 각 종류당 6병만 출품 가능했는데, 이는 일부 심사관들이 테이스팅 하거나 전시장에 진열하기에는 충분했지만 수천 명의 일반 대중들이 테이스팅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따라서, 당시 보르도 상공회의소(Bordeaux Chamber of Commerce and Industry)는 출품된 와인들의 세부 지역을 그린 지도와 전체 와인 목록을 만들어 대중들에게 제공하기로 결정한다. 1855년 4월 5일, 보르도 상공회의소는 당시 보르도 와인의 유통을 전담하고 있던 보르도 와인 중개 협회(Broker's Union)에 이러한 상황을 전달하며, 5개 등급에 속해 있는 생산자 명단과 각 생산자의 포도원(와이너리) 부지를 그려 넣은 지도를 제출해 달라는 요청을 하게 된다. 약 2주 후인 1855년 4월 18일, 보르도 와인 중개 협회는 지도와 함께 생산자 명단을 제출하였고 이에는 총 5개 등급에 60개의 생산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보르도 그랑크뤼 등급의 시초가 된다. 당시 등급 분류에 포함된 60개의 생산자들은 '그랑 크뤼 등급' 명칭을 부여받게 되었고, 이는 이 지역에서 최고의 와인을 생산하는 생산자(또는 와이너리)임을 의미하게 됐다. 이와 더불어 등급 분류는 세계 박람회에서 보르도 와인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임시적인 조치였기 때문에 절대 공식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칙령이 달렸으나, 160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단 두 번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조정이나 변경은 없게 된다.
*예외 1. 1855년 9월 16일, 보르도 > 메독 > 오-메독(Haut-Médoc) 지역의 생산자인 깡뜨메를르(Cantemerle)가 5등급에 추가된다. 이 결과 그랑크뤼 등급을 부여받은 생산자는 총 61곳이 된다.
예외 2. 1973년 6월, 2등급 생산자였던 샤또 무통-로칠드(Château Mouton-Rothschild)가 1등급으로 승격되었고, 이로써 현재 우리나라에서 '5대 샤또'라고 불리는 5종의 1등급 와인 생산자가 탄생하게 된다.
보르도 1등급 와인 샤또 라피트 로칠드 와이너리 전경
◾ 끝없는 갈등과 재조정 요구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재는 등급 제도를 두고 끊임없는 잡음이 나오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당시 등급 분류에 선정된 생산자들 중에는 시간이 흐르면서 소유주가 바뀌거나 포도밭 부지가 변하면서 품질이 저하된 곳도 있다. 둘째, 당시 그랑크뤼 등급 리스트에 선정되진 못했지만 현재는 그랑크뤼 와인보다 훨씬 더 높은 품질 수준의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도 있다. 그리고 등급 분류 이후에 새로 생겨난 생산자 중에서도 좋은 품질의 와인을 만드는 곳이 여럿 생겨났다. 마지막으로, 해당 등급 분류는 레드 와인 부문에 있어서는 보르도 > 메독(Médoc) 지방의 생산자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는 문제가 있다. (이후에 그라브(Graves)나 생-테밀리옹(Saint-Émilion) 지역에서도 별도의 등급 체계가 제정된다.)
즉, 세월이 흐르며 현재를 반영하지 못하는 제도 때문에 지금이라도 등급 분류가 재조정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 만들어진 등급의 상징성이나 명성, 그리고 상업성 등 다양한 측면의 이해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 보니 재조정을 진행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지금은 단순 등급보다는 시장가가 오히려 더 신뢰할만한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결국 소비자들이 가격으로 등급을 부여한 것이다. 결국, 아무리 훌륭한 제도나 법규도 시장의 힘을 이길 수 없다는 명확한 사례가 보르도 그랑크뤼 등급이 아닐까 싶다.
정한호 | 콜라블(Collable) 대표